배달의 기수, 강필중배달의 기수, 강필중

Posted at 2012/02/17 16:52 | Posted in 잡글들/소설
* 절필 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거.


1.

  그 날은 유난히 일이 적어서, 택배기사 강필중씨는 평소보다 일찍 본래 담당 구역을 다 돌고 부탁받은 잔무에 착수할 수 있었다. 아내가 아프다며 조퇴한 동료기사 박씨가 담당하는 택배들이었다. 갑작스런 부탁에 터미널까지 돌아가서 상차까지 끝낸 짐들을 도로 옮겨 싣느라 대낮부터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모른다. 그는 땀을 닦으며 무심코 핸드폰을 열고 첫 택배 수취인의 전화번호를 찍어 넣다가 자기도 모르게 동작을 멈췄다. 핸드폰 액정에 새겨진 번호의 모양새가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눈에 익었던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강필중씨는 머지않아 해답을 찾아냈는데, 그 해답이란 것이 전혀 엉뚱한 기억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에 자동차에 올라타는 일도 잊은 채 잠시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트럭에 기대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6년 전에 헤어진 마지막 애인의 전화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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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ights of CydoniaKnights of Cydonia

Posted at 2011/11/11 01:44 | Posted in 잡글들/소설

 아버지의 실종이 명확해지자, 사람들은 아버지가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너무 쉽게. 마치 애초부터 아버지가 실패하기를 기다려왔던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아버지의 실패에 과장된 수사를 덧바르고 의미를 채색해 성마른 애도사를 생산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순간부터 아버지를 기다린 나에게, 사람들의 애도는 일종의 과격하고 서툰 네크로필리즘처럼 느껴졌다. 산 사람을 질식시켜 절벽 너머로 떨어트린 후에야 먼 곳을 향해 바치는 애도. 그건 누구를 위한 애도였을까?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성공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좌절한 영웅의 무덤에 꽃을 무더기로 바치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엄숙한 제의를 행하고, 아직 먼발치서 빛나는 희망과 막아내야 할 절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희망은 그런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절망도 마찬가지로 도래하지 않는다. 삶이란 원래 그 중간의 어디쯤을 부표처럼 떠다니다가 고요히 썩어가기 마련이란 걸,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은 미처 떠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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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t and ParisJuliet and Paris

Posted at 2011/08/09 16:52 | Posted in 잡글들/소설

영지로 돌아가기 전 날 밤이었다. 아버님은 나를 안채로 조용히 부르셨다.

 

베로나에 가거든 너와 혼인을 맺기로 한 처자가 있을 게다. 캐퓰릿가의 줄리엣이라고 한다. 어른들끼리는 다 이야기가 된 참이니 가서 인사도 하고 혼인 날짜도 정했으면 좋겠구나. 요사이 봄날 볕도 좋으니 되도록 빨리 했으면 어떨까 싶은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혼인이요?”

그래, 혼인.”

아버님. 저는 아직 결혼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어떻게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나이가 찼는데 소식이 없으니 알아본 게 아니냐. 어차피 나중엔 나한테 감사하게 될게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제가 결혼할 사람은 제가 직접 정하겠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 그랬지.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세상에는 자기가 원하는 때에, 사랑하는 사람과, 절실한 이유로 결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거랑은 전혀 다른 얘기 아닙니까. 제 이야기는, 적어도 제 결혼 상대방은 제가 직접 정하겠다는 겁니다. 제가 엄청난 욕심을 부리는 겁니까?”

당연히 엄청난 욕심이지. 왜인지 알고 있냐?”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일단 가보고 결정해. 그래도 안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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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오 이게 얼마만에 보는 소설인가!

    그런데 펼치면 글씨체가 달라져서 가독성이 순식간에 떨어지네.ㅠㅠ

    일단 수정을 예고했으니 수정후 보겠어~
    • 2011/08/10 17:44 [Edit/Del]
      어 제가 보기엔 멀쩡한데; 이상하네요
      근데 결국 이러다가 수정 안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다시 썼음 다시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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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of DreamInside of Dream

Posted at 2011/05/13 02:50 | Posted in 잡글들/소설

I.

꿈을 꾸었다. 네가 죽는 꿈이었다. 인도양 상공을 이만 오천 피트에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네가 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하늘과 검고 고요한 바닷물의 경계에서 모종의 신호처럼 반짝이는 규칙적인 불빛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마치 사방이 스크린과 침묵으로 가득한 우주적인 영화관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발밑에는 구름이 깔리고 고개 위로는 달이 빛났다. 이상 난기류나 포악한 기상현상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한밤의 비행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름다울 고요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불안함을 내포한 침묵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거대한 풍경에 내팽개쳐진 내 마음은 그 중간쯤에 서 있었다. 내 마음은 스스로 만들어 낸 꿈속에서도 아무 것도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그 무력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풍경은 내 무력함과 관계없이 서서히 비행기를 향해 클로즈업을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 그 위에 떠 있는 구름들, 그리고 정지된 듯 수백 노트의 추력을 내뿜는 제트엔진, 그런 것들이 흘리는 규칙적인 소음이 마침내 귀에 들릴 무렵, 나는 너의 집에 있던 낡은 냉장고를 떠올렸다. 너는 유독 잠귀가 밝았다. 신경이 예민해진 날이면 새벽녘 웅웅대는 냉장고 소음에도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깨어나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흐느끼기도 했다. 내가 너의 숨죽인 흐느낌을 얼마나 많이 껴안아 줄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이 발하는 빛과 모든 것이 내는 소리가 유독 거대한 의미로 다가오는 그 새벽에, 초라한 추방자처럼 잠에서 깨어나 하염없이 잠든 이들을 내려 봐야만 했던 거대한 고독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냉장고 소리를 내는 비행기 안에서, 너는 수면안대를 낀 채 자리에 누워 있었지만, 필연처럼 잠들지 못한 너의 미세한 뒤척거림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마 나뿐이었을 것이다. 수면등만 켜진 어두운 비행기 안에서, 너를 제외한 모든 승객들은 거짓말처럼 곤히 잠들어 있다. 너는 귀마개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나지막한 소음을 견디지 못해 몸을 조금씩 움찔거리다가 기어코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기체 허리춤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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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타
    소스코드 보고 한탄했던 게 이 작품이로구나.ㅋ 모르는 방에서 눈을 뜨기 전까지는 내 기억 속 네 작품 중 단연 최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어.
    • 빈군
      2011/05/15 01:25 [Edit/Del]
      막판은 언제나 그렇듯 끈기부족/졸음폭발의 여파가...
      그나저나 이게 최고라니! 전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엉망이었던 걸까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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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황인숙강, 황인숙

Posted at 2010/09/19 08:52 | Posted in 잡글들/그외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생전 처음 보는 시가 이렇게 와닿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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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황인숙  (3) 2010/09/19
  1. 김타
    우와. 이거 너 보라고 쓴 시네. 이메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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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CaliforniaHotel California

Posted at 2010/04/01 21:25 | Posted in 잡글들/소설

  사막은 넓고 더웠다. 남자는 눈앞에 안개처럼 뿌옇게 번진 모래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오른손으로 눈썹 위에 고인 땀방울을 훔쳐냈다. 오래도록 기어 스틱을 붙들고 있던 오른손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끈적한 느낌이 한결 가셔도 작은 먼지들이 두드러기처럼 들러붙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지독한 열기는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당신 말을 들을 걸 그랬어.

  아내는 사막횡단 고속도로를 타기 전에는 반드시 자동차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괜한 노파심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총연장 만 오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사막횡단 고속도로에는 상, 하행선을 통틀어 휴게소가 네 개 뿐이고, 잠시 몸을 쉴 수 있는 곳이라고 해 봐야 세 시간에 한 번 꼴로 나타나는 무인 주유소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나마도 낡은 냉커피 자판기와 파라솔 두세 개뿐인 휴게시설에 절망할 때쯤이면, 사막 먼 곳에서 발작처럼 모래폭풍이 일어나곤 한다. 허둥지둥 차 안으로 몸을 숨겨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쉰 목소리로 지껄이는 라디오를 들으며 한껏 시간낭비를 한 뒤에야 모래바람 때문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사전점검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 하더라도 이 고속도로를 타고 사막을 무사히 횡단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자동차 상태를 점검하라는 조언은 사막여행자의 금과옥조로 삼기엔 지나치게 원론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남자가 굳이 아내의 충고를 떠올린 이유는, 그저 그것이 누군가의 유언으로 삼기엔 지나치게 건조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꼬박 팔 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바람막이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남자를 물끄러미 올려보며 짤막하게 물었다. 또 어디 가? 남자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양말을 벗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틀 후에. 사막을 건너야 될 것 같아. 출판기념회가 있어서. 아내는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속옷만 입은 남자가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할 때,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차 끌고 갈 거면, 종합점검 받고 가. 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을 때 까지도 아내가 단순히 잠들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팔 개월 만에 집을 찾은 남편을 고작 낮잠으로 반기는 아내의 태도에 적극적으로 분개하거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냉장고에서 찾아낸 캔 맥주를 홀짝거리며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을 뿐이다.

  해가 지자 남자는 잠들었고, 밤늦게 깨어난 후에야 아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챘다.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둔 아내의 얼굴은 거의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질려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새벽이 깊어갔다. 형광등이 껌뻑이는 침실에서 남자는 덩그러니, 바싹 마른 아내의 입술을 매만졌다. 아직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남자가 울기 시작한 건 숨을 거둔 아내의 품에서 오래된 미라처럼 말라버린 갓난아기를 발견했을 때였다. 아내의 가슴팍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은 아이는 꼭 아내와 한 몸 같아 보였다.

  아이를 아내에게서 떼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갈퀴 모양으로 뻗은 채 말라버린 아이의 손을 꼭 말아주고, 껌뻑이는 불빛에 멍하니 고정된 아내의 눈을 감겨준 뒤, 남자는 침대 곁에 무릎 꿇은 채로 아내의 손을 꼭 쥐고 미친 사람처럼 오열했다. 이윽고 해가 다시 떠오르고 갈래진 햇살이 커튼 너머로 깊이 스며들 때 까지도 남자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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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H는 역시 HOTEL인가..
    내일 원고쓰다 심심할때 읽어보도록하지.ㅎㅎ
    친구는 어디있는데? 경쟁업체가 한둘이어야지.ㅋㅋㅋㅋ
    국어 출판사가 그렇게 많은 줄은 회사 들어가서 첨알았네.
    25개가 넘더라고..

    얼굴은... 그냥 신입의 신고식이라고나할까나..;;;
    • 빈군
      2010/04/01 23:55 [Edit/Del]
      "역시 호텔" 이라니 예상이라도 하신건가요...
      (하긴 저도 처음부터 어쩐지 정해둔 단어긴 했지만)

      친구는 교과서 만드는데요. 천재교육이라고
      비상때문에 야근좀 했대요 ㅋㅋ
      아 괜히 3자 입장에서 보니 재밌네요 (...)
  2. ㅎㅎ 천재? 거기 우리과 후배도 있는데;;
    당연히 국어교과서겠지?
    이번에 중등 국어교과서가 검정으로 풀리면서
    천재에서 3종이나 내는 바람에 빡셌을꺼야.
    우리는 2개 내서 하나 떨어졌거든. 암튼 난 문제집이라..ㅋㅋㅋ
    • 빈군
      2010/04/03 13:03 [Edit/Del]
      호오라. 이런 식의 뒷정보들이
      근데 그 아이 말로는 회사가 작아서 고대 출신끼리는 다 안다던데;
  3. 엉.. 아마 다 알껄?;;

    그 후배 연락할 일이 있어서 함 물어 봤는데 부서가 달라서 좀 가물가물 한가봐.

    근데 어차피 학번은 선배겠지?ㅋㅋ 02니까 내 후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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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s of youGhosts of you

Posted at 2010/03/23 21:32 | Posted in 잡글들/소설

이 편지는 행운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요, 당신이 무슨 생각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끝까지 읽어보세요.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니까요? 당신은 아마 이전에도 비슷한 편지를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무시하고 뭉개버린 지 4일이 아니라 4년, 혹은 40년이 지났는데도 특별한 불운 같은 건 찾아올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는 분도 계시겠죠. 혹은 그 편지의 내용을 믿고 4일 안에 7명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확실히 맹세해 드리죠. 이 편지는 진짜 행운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됐다는 그 ‘첫’ 행운의 편지를 작성하고, 글귀에 영원히 지속될 마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입니다.

원작자로서 자신 있게 말하는데, 당신들이 받았던 편지는 죄다 가짜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가 마력을 불어넣은 진짜 행운의 편지는 1963년 케네디 암살사건을 마지막으로 이렇다 할 효력을 발휘한 적이 없어요. 그래요. 그 가짜 편지에도 명시된 그 사건 말입니다. 대충 짐작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 저는 이 편지를 두 번 개정했습니다. 1930년 복권 당첨 사건이랑, 1963년 케네디 암살사건 때 말이죠. 그런데 원본을 개정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가짜도 똑같이 개정을 해 버리더군요. 전 그네들의 작태가 너무 치졸해서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원조 맛집은 진짜 원조나 100년 전통의 원조란 간판을 달지 않아도 빛을 발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엔 맛집 블로그는 수없이 많아도, 원조 행운의 편지를 감별하는 블로그 같은 건 없더군요. 당신들을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보통 사람들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편지일 뿐이니까요. 설령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아는 마법사가 제 글을 읽는다고 해도, 미치지 않은 이상 그걸 섬세하게 분석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진 않을 겁니다. 데미지도 어마어마할뿐더러 정체가 발각되는 순간 테크노크라시들이 미친개처럼 달라붙을 테니까요…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어쩌면 소용없는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마지막으로 개정판을 한 번만 더 내 보기로 했습니다. 저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그냥 짜증이 나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당신들이 제 말을 믿고 주변 사람들에게 뜻밖의 행운을 전파하건 말건, 그건 이미 제겐 100년이나 지난 관심사일 뿐입니다. 저는 그냥 진짜가 가짜를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겁니다. 확실히 해 둘까요.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더 믿어보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속는 셈 치는 순간 당신들은 이미 속은 겁니다. 당신들은 저를 믿어야 합니다. 제가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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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지런도하다. 난 읽는 것도 벅찬데, 쓰는 것까지 하다니.




    그나저나 이거 읽어야 되는거야 말아야 되는거야.;;
    진짜 '행운의 편지'라니..ㄷㄷㄷㄷㄷ
    • 빈군
      2010/03/24 18:00 [Edit/Del]
      사실 쓰는거보다 읽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중요한 것처럼...

      널리널리 읽으시라고 올려둔 것 아니겠습니까 흐흐
  2. 아니 뭐 혹시나 너의 "행운의 편지" 낚시가 아닌가해서 ㅎㅎ
    이거 Z까지 다쓰면 다시 원고 좀 정리해서 우리 출판사로 가져와
    출간해줄테니..완자 뒷면에 실어 줄께.ㅋㅋ
    • 빈군
      2010/03/25 12:48 [Edit/Del]
      단행본 아니면 어림없습니다 후후......가 아니라 출판사 들어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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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my loveFarewell, my love

Posted at 2010/03/17 22:44 | Posted in 잡글들/소설

  늦게 일어난 탓에 기분이 나빴다. 그래, 그게 문제였던 거다. 기분이 나빴던 탓에 모든 일이 이따위로 이상하게 풀린 거다. 그러니까 사람은 일찍 일어나고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눈이 떠질 때 침대를 툭툭 털고 일어섰더니, 태양은 이미 중천에 떠 있고,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하거나 혹은 잡스러운 웬갖 것들이 나만 홀라당 빼놓고 바쁜 하루를 시작해 버렸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먼저 집을 비운 아내가 아침 여덟 시에 보낸 문자나 점심시간에 찍혀 있는 부재중 통화 기록 같은 것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대처하기가 싫어지는 법이니까. 대체로 그런 연락의 목적이란 건 밥은 밥통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며 국은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으니까 부디 알아서 처먹도록 하세요. 정도로 뻔한 내용인 법이잖아? 한동안 나 볼 생각 하지 마, 라던가 애는 친정에 맡겨둘게, 같은 문자가 와 있을 줄 알았다면, 설령 어떻게 끌고 왔는지도 모를 내 자동차 트렁크에 누군지도 모를 사람 두 명이 널브러져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두 사람 모두 호흡이 정지한 상태였다는 게 확인 되었더라도 일을 이따위로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아내한테 전화 한 통 정도는 할 정신이 있었겠지. 3년 남짓한 결혼생활 동안 아무리 개차반직전인 남편이었다지만 적어도 나는 아직 법적으로 그녀의 남편이었고, 이런 상황에 놓인 남편은 보통 아내에게 나한테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이야? 정도 되는 말을 전할 자격은 갖고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늦게 일어났더라?

 
어디선가 내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그걸 몰라서 물어?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범인은 술이다. 술을 쫌 많이 마셨다. 그것도 아마 모르는 사람이랑 마셨던 것 같다. 술자리가 시작될 때부터 그랬다는 말은 아니고, 아마도 3차나 4차쯤 되는 시기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처음 보는 남자 하나, 여자 하나를 양 옆에 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만 흔들었고. 그 때 나랑 같이 있던 그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난감한 표정? 뜬금없이 달라붙은 이 혹을 어떻게 떼어내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 아니다. 때마침 그 사람들 역시 독한 취기와 그보다 독한 사연들에 휘감긴 채로 세상의 고민은 자기들이 다 짊어진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퍽이나 눈치가 빠른 편이라서, 아무리 만취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나를 귀찮아하는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에게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거나 함부로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아내의 무수한 제보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이 아직까지 나에 대한 신뢰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그 정체 모를 남녀와 술을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네들이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던 사안이 무엇이었는지도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술 때문에 끊긴 필름이란 것이 대체로 그렇듯, 발작적으로 편집된 점프 컷 같은 영상들만 드문드문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음성과 영상의 불일치가 돋보이는 이 불확실한 기억들을 인내심 있게 조사하다 보면, 기어코 단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장면 하나가 퍼뜩 떠오른다. 그 장면에서, 나는 양 팔을 벌려 두 남녀를 내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고는, 옆집 부부싸움 내용을 몰래 엿들은 아주머니처럼 속삭이고 있다.

 
“…사실 그게 우리 마누라에요.”

 
뭐가 우리 마누라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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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in

    니 소설 첫머리가 일기같아서 읽다가 자꾸 놀란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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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lipseEclipse

Posted at 2010/03/10 17:03 | Posted in 잡글들/소설

  남자는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고 나서야 어젯밤 어머니가 챙겨주었던 팔백육십육만오천삼백이십일원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표 네장에, 현금은 칠십칠만원이었다. 주머니에서 어머니가 적어준 메모를 뒤늦게 찾아내고, 거기 꼼꼼하게 적힌 수표 및 현금 액수, 계좌번호와 은행 이름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사태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간신히 파악할 수 있었다. 썅년같으니. 부르튼 입술을 부르르 떨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사실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남자가 집을 방문한 것은 꼭 석달만이었다. 어머니는 나뭇잎에 물이 오를 때 집을 나가 낙엽이 떨어질 때에야 돌아와서는 대뜸 따뜻한 저녁밥을 요구하는 아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심부름을 맡겼다. 이번 달 곗돈을 무통장 입금시켜 달라는 간단한 부탁이었다. 남자는 나름 두툼한 현금과 수표뭉치를 받아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엄마는 내가 이 돈 갖고 날라버리면 어쩔 낀데? 아들이 자신의 말투를 흉내 내며 던진 농담에 어머니는 웃지도 않고,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심한 태도로 과도를 놀려 사과를 깎으며 대답했다. 죽여버릴끼다. 사과즙이 묻어 형광등 아래 찐뜩하게 빛나던 칼날과, 언젠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EBS 따위에서 봤던 소금평원의 갈라진 등짝처럼 짜게 굳어버린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남자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집을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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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ingDreaming

Posted at 2010/03/09 22:44 | Posted in 잡글들/소설
<2010년 1월 13일 오후 2시. 서울 지방법원, 1차 공판 현장.>


- 증인은 선서하세요.

- 네.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증인, 이현경.

- 원고측은 심문 시작 하세요.

- 알겠습니다. 간단한 사실관계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증인, 증인은 2006년 3월 17일 펴낸 논문에서 최면을 통해서 사람에게 본인이 원하는 꿈을 꾸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한 바가 있지요?

- 최면만으로 불가능합니다. 최면치료와 함께 몇 가지 약물처방 및 심리 상담을 병행해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꿈을 꾸게끔 유도하는 방식에 관한 논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임상실험 결과를 함께 수록했으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시 실험 성공률도 90% 내외로 측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 논문의 요점은 사람들이 원하는 꿈을 꾸게끔 유도하는 게 아니었다, 이 말씀이신가요?

- 네. 정확히 ‘그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 알겠습니다. 증인의 이론은 같은 해 7월 1일 발간된 논문을 통해서 반박당한 바 있습니다. 알고 계시죠?

- 알고 있습니다.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던… 동료가 제 방식을 이용하여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친 결과를 수록한 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사님, 그건…

- 바로 그 논문에 수록된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에 의하면 증인이 개발한 방식의 성공률, 즉 피 실험자들이 사전에 작성했던 내용과 같은 꿈을 꾼 비율은 3% 내외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후 연장된 실험기간동안 비슷한 구도의 꿈을 꾼 사람까지 모두 더하더라도 성공률은 20% 미만입니다. 증인, 증인은 이 실험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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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새소설이군..
    독특한데,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능력자라.
    다음편엔 라쇼몽처럼 기준과 준경의 입장에서 연작으로 써보는건 어때?
    • 빈군
      2010/03/10 17:18 [Edit/Del]
      하지만 시점을 이리 멀리 잡은 건 제가 베드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라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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