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요상한 사람이다. 글과 말의 천박함과 비루함에 대해 이토록 장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글과 말로 평생을 벌어먹어 왔으며 심지어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란 사실을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단 말인가. 김훈이 쓰는 문장의 서글픔은 결국 이 필연적인 자기배반에서 솟구친다. 그는 누구보다도 굳은 문장으로 선언하여 결국 누구보다도 굳은 표정으로 스스로에게 불합격을 선언하고 만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이야기로 흘러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풍경과 사건 발치에서 머뭇거리는데, 이런 점이 유독 도드라지는 게 에세이보다는 소설, 그것도 역사소설보다는 <공무도하>같은 현대소설이다. 기나긴 페이지를 넘어넘어 하얀 화폭에 끊임없이 풍경만 그려넣는 화백처럼 김훈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그려넣는 데에만 몰골한다. 그 모든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의미있는 이야기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비루하고 천박한 말의 장난에 지나지 않다는 걸 증명할 우화가 될 것인지, 그의 글을 다 읽은 사람은 어찌됐든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 참 요상한 글이다.
일전에는 이 양반의 <화장>을 읽다가 요로결석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끼쳐서 책을 놓아버린 적이 있다. 글줄로 병마의 고통을 독자에게 안길 수 있는 문장이라니. 나는 김훈보다 이 "세상에" 밀착한 문장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일종의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적어도 적어도 닿을 수 없는 생명과 세계의 경지에 대한 김훈 나름의 찬탄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찬탄이 크면 탄식이 된다. 그러니 <공무도하>의 허허로움은 찬탄의 끝에서 마주한 탄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나공하... 뭐 그런 것처럼? 그러니 그의 말들은 끝끝내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을 건넌 혼백을 따라가지도 못해 강을 따라 흘러간 시신들의 이야기만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런 미련한 기록으로 기어코 세상을 읽어보려 시도한다. 아마 스스로는 "백전백패" 할 거라고 하겠지만. 그에게서 다시 단호한 배반들이 느껴진다. 대단한 사람이다. 김훈.
